[경제] 레이어드 머니: 돈이 진화한다

 

레이어드 머니: 돈이 진화한다

지은이 닉 바티아 / 옮긴이 정성환 / 출판사 심플라이프

인류가 조개껍데기를 사용하던 시대부터 금, 은, 달러를 거쳐 현재 뜨거운 비트코인에 이르기까지 화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하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책. 독자가 금융 시장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는 '계층 화폐(Layered Money)'라는 자신만의 용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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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게 된 계기

 

나는 아직 실제 비트코인을 갖고 있지 않고 비트코인 ETF인 'BITO'만 보유 중이다. BITO는 실제 비트코인은 아니지만 비트코인의 시장가와 연동되는 것이 특징이며, 꽤 높은 배당금을 챙겨 준다. 이제는 ETF로 간접 투자를 할 게 아니라, 실제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입시컨설팅을 하면서 테크놀로지 특강으로 블록체인 주제를 많이 가르쳤지만 이론적인 내용만 알고 있는 것과 Practice in Use는 아무래도 천지차이인 것 같다.

우선 왜 사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내 입으로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 정도는 되어야 정확히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나는 왜 비트코인을 사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폭증하는 매수세를 깔고 있는 괜찮은 투자자산이라는 것만 말할 수 있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내용들만 머릿 속에 둥둥 떠 다닌다.

교보문고에서 비트코인을 검색하니 '단타의 정석' '대충 어쩌구 빨리 올라타라!' 식의 책들만 한가득이었다. 늦기 전에 빨리 투자하라는 이야기 말고, 왜 비트코인이 미래의 자산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듣고 완전히 이해하고 싶었다. 스크롤을 내리니 출간한지는 꽤 되었지만 이런 갈증을 해결해 줄 책이 한 권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준이 되는 화폐들은 계속 바뀌어 왔었다. 비트코인도 미래의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까? 유튜브 말고 스레드 말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거시 흐름을 살펴보며 비트코인을 이해해본다. 조개껍데기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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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구절

 

• 27p.

즉 유통되는 주화의 종류가 너무 많았고 이로 인해 화폐의 유통 속도가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화폐 유통 속도는 돈의 손바뀜이 얼마나 빨리 일어나는지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 돈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이전하는 속도로, 적정 수준 이상의 속도가 보장돼야 사회 전체가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원활한 경제활동이 이뤄진다.

조개껍데기와 철을 서로 교환하려면 거래 당사자 두 명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혹은 중개인이 필요하다. 같은 동전 주화라고 하더라도 금/은의 순도, 무게 등에 따라 가치도 천차만별이다. 매번 거래할 때마다 서로의 가치를 재고 따져야 하니 유통되는 화폐의 종류가 많아지면(너무 다양해지면) 경제 활동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경제를 부흥하려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화폐들끼리의 비교와 교환이 쉬워야 한다.

 

• 61~63p.

17세기 들어 네덜란드 상인들은 아시아에서 향신료를 사들여 유럽에 되파는 향료 무역시장의 높은 수익률과 성장률을 보고 인도네시아 자바섬으로 향하는 모험가 선단에 투자를 확대했다. ... 아시아 무역은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했다. ... 상인들은 서로 힘을 모아 단일 조직을 만들면 자본 유치가 용이해져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1602년 역사상 최초 주식 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설립 배경이다. ...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투자자가 자본 투자의 대가로 기업 소유권 일부를 종이 증서 형태로 소유한 역사상 첫번째 사례였다. ...그렇다면 당시 주주는 주식 매도금으로 어떤 종류의 화페를 받고 싶어 했을까? ... 만약 여러 종류의 금화와 은화를 가득 담아 지급했다면 원활한 주식 거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 그 해결 방안으로 암스테르담 은행을 설립했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길더'를 표준 화폐로 삼아 모든 예금자가 즉시 결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출시했다.

암스테르담 은행이 생기기 전의 암스테르담은 천 가지 종류 이상의 다양한 주화를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동인도회사 주식의 인기가 치솟는 만큼 빠른 거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거래할 때마다 주화의 가치를 비교해야 하니 매우 골치 아팠을 것이다. 

 

• 75p.

첫번째 계층 화폐
(정의) 중앙은행의 본위 자산으로, 최종 결제의 역할을 함.
(예시) 금, 국채.

두번째 계층 화폐
(정의) 첫번째 계층 화폐의 부산물. 두번째 계층 화폐는 곧 첫번째 계층 화폐로 바꿔줄 수 있다는 중앙은행의 약속이기도 함.
(예시) 중앙은행 예금, 중앙은행 은행권.  

세번째 계층 화폐
(정의) 두번째 계층 화폐의 부산물. 세번째 계층 화폐는 곧 두번째 계층 화폐로 바꿔줄 수 있다는 민간은행의 약속이기도 함.
(예시) 민간은행 예금, 환어음.

세번째 계층 화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자산을 가지고 타인과 빨리빨리 거래하기 좋지만(유동성), 만약 금융위기가 발생해 본위 자산인 금으로 모두 바꾸고 싶다면 민간은행에서 한번, 중앙은행에서 한 번 바꿔야 한다. 두번째 계층 화폐를 가지고 있으면 유동성은 떨어지지만 본위자산인 금으로 한 단계만에 바꿀 수 있다. 금융위기가 닥치면 모두가 세번째에서 두번째, 두번째에서 첫번째 화폐로 (더 본질적인 자산으로) 바꾸려 하는 뱅크런이 일어난다.

 

• 77~78p.

잉글랜드은행은 잉글랜드에서 지폐를 발행하는 독점적 지위를 굳혔다. 민간 부문에서는 증서 소지자가 요청할 때 금 지급을 약속하는 두 번째 계층 은행권을 더 이상 발행할 수 없었다. 민간 부문이 화폐 피라미드의 세 번째 계층으로 영원히 밀려난 것이다. ... 화폐 피라미드가 팽창할수록 보다 아래쪽에 위치한 화폐는 탄력성이 커지는 반면 이는 단지 위 단계 화폐의 부차적 산물이므로 안정성은 더욱 떨어진다.

중앙은행은 첫 번째 계층 화폐를 바탕으로 두 번째 계층의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는 권력을 독점하고, 타 민간 은행들은 두 번째 계층 화폐를 바탕으로 세 번째 계층 화폐를 유통할 수 있는 권력만 갖게 함으로써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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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역자 Tip' 섹션이 존재한다. 저자가 작성한 내용 중 부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역자가 추가적인 지식을 서술해 놓았다. 책을 읽으면서 '이게 왜 이렇게 된다는 거지?' 싶을 때마다 역자가 센스 있게 추가 설명을 한다.

비트코인에 관심이 없더라도, 금융 시장의 기초적인 원리를 이해하기에 좋은 책 같다. 화폐로 인정 받으려면 어떤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지. 화폐의 조건을 지키지 못한 화폐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이유 때문에 몰락하게 되는지. 어쩌다가 증서나 어음같은게 생기게 되었는지. 은행은 어떻게 돈을 창조해내는지. 금융에서 신용이란 어떤 위치인지. 우선 금융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먼저 할 수 있어 경제 서적 입문자에게도 추천할만하다.